* 캐붕주의
* 우울주의
So,
Ace X Luffy / Sabo X Luffy
w.회루
빡빡하게 감겨오는 두 눈이 뻐근함을 호소했다. 몸에 있는 수분이란 수분은 다 쏟아낼 기세로 울었던 일이 무색하게 뻐근한 두 눈을 감아내자마자 순식간에 차오른 물기가 소매를 적셨다.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숙여낸 머리 위로 커다란 손이 닿아왔다. 괜찮다는 듯, 느릿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그 행동에 꾸역꾸역 밀려오는 물기를 어거지로 삼켜내던 눈가가 종국엔 쉴 새 없이 물기를 뱉어냈다. 뱉어내는 울음소리조차 죄가 되는 것 같고, 그 무게가 크게 다가와 차마 입 밖으로 소리 내지 못한 울음이 속에서 먹혔다. 끅끅거리는 듣기 싫은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가슴 언저리에 무거운 돌덩이가 자리 잡고 앉아 도저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무거운 돌덩이를 치워내려 노력해도 슬픔을 양분으로 삼은 그것은 차근차근 크기를 더해 나를 짓눌러 온다. 꽉 막힌 무언가가 자꾸만 크기를 더한다. 토기가 올라오고 몸에 있는 수분을 짜내다 턱, 하고 숨이 막혀 오는 느낌에 앞으로 고꾸라진 내가 손톱으로 바닥을 긁어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그 고통 속에서도 자꾸만 네 탓이야, 하고 나를 책망하는 목소리가 들려 이대로 숨이 끊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대로 숨을 쉬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 …루피! "
그리고 거짓말처럼 나를 책망하던 목소리 대신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막혔던 기도가 터지고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공기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 내쉬는 걸 반복하며 밭은기침을 내뱉은 내가 찔끔 새어나오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흥건히 젖은 손등을 말없이 바라보다 다시 한 번 나를 불러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냈다. 형용할 수 없는 그런 표정으로, 잔뜩 괴로움에 미쳐버릴 것 같은 그런 얼굴로다가 나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달달 떨리는 내 손을 꾹 쥐어내며 나와 시선을 맞추는 푸른 색 눈동자가 짙다.
" …사보. "
하도 울어 다 갈라진 목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입안이 말라 쩍쩍 갈라지는 게 느껴지고 바싹 마른 입술이 이질감을 배로 만들어준다.
" 괜찮아, 루피. 나 여깄어. "
나머지 한쪽 손으로 잔뜩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사보는 말했다. 그런 사보의 말에 잠시간 마음이 고요해진 나는 멍청한 얼굴로다가 사보와 시선을 맞췄다. 푸른 눈동자 주변으로 실핏줄이 다 터져있는 눈이 피곤함을 호소한다. 눈 밑으로 짙어진 검은 그림자는 그가 얼마나 피곤한지를 가늠하게 해줬으며 분명, 며칠 전에 본 것 같은 검은색 정장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검은색 정장. 검은색 넥타이. 천천히 그의 팔로 시선을 내린 나는 노오란 베로 만들어진 완장을 두 눈에 담았다. 노오란 베로 만들어진 완장. 그리고 고개를 내려 내 팔뚝에도 둘러져 있는 노오란 상주 완장. 삐그덕 거리는 목을 움직여 사보 뒤로 보이는 익숙한 얼굴을 담은 액자엔 검은색 리본이 묶여 있었다.
" …에이스. "
듣기 싫은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잔뜩 쉬어빠진 목소리가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그를 부른다. 주민등록증을 만들겠다며 몇 년 전 함께 가서 찍은 사진이 커다랗게 프린트 되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걸려있다. 길게 찢어진 눈, 곱실거리는 까아만 머리. 웃을 때면 도드라져 보이는 주근깨. 모든 게 그가 맞는 데 그라는 사실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달려와 제 목을 조르며 머리카락을 부빌 것 같은데, 그것마저도 상상 할 수 없게 만드는 프레임이다.
다시 한 번 내 안에 있던 커다란 돌덩이가 크기를 더했다. 심장이 욱신거리고 토기가 올라와 목구멍을 처막는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 번 터진 눈물샘은 지치지도 않는지 물기를 뽑아낸다. 잔뜩 짓물러있는 눈가를 타고 내려오는 쓰라린 감각이 이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걸 말해준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흐릿해지는 시야를 손등으로 억지로 훔쳐내며 자꾸만 뿌애지는 에이스의 사진을 시야에 담았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건지, 자꾸만 에이스를 담은 사진이 뿌옇게 흐려진다. 숨이 턱턱 막혔다. 누군가가 목을 조르고 있는 것 마냥 숨이 막혔다. 그리고 그런 나의 어깨를 붙들며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어쩌면 가장 필사적인 표정으로 내 이름을 불러오는 사보의 얼굴을 바라본 내가 흐릿해지는 시야에 두 눈을 꾸욱 감았다 떠냈다.
" 루피, 정신 차려. …제발. "
잔뜩 물기가 어린 목소리가 다 터진 입술 사이로 비집고 흘러나온다.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 애달파 괜히 가슴 한구석이 절로 욱신 거려온다. 다 일그러진 얼굴이 물기를 담고 있다. 당장이라도 푸른 눈에서 물기가 쏟아질 것 같다. 그래, 사보도 나만큼 힘들지. 여전히 파들파들 떨리는 손을 들어 잔뜩 상해 거칠어진 얼굴을 쓰다듬은 나는 그대로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
꿈을 꿨다. 내가 꾸는 꿈속에서는 비가 내렸다.
분명 일기예보에서 오늘 하루는 쾌청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우산을 챙기지 않았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나왔을 땐 이미 세상이 물바다였다. 천둥과 번개를 함께 동반한 비는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마냥 자비 없이 차갑고 시린 물줄기를 쏟아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유독 축축 처지는 에이스를 모르는 게 아니라, 지금쯤 집에서 혼자 끙끙 거리고 있을 걸 생각하니 뒤이어 있을 연강에 도저히 출석할 수 없을 것 같아 결국엔 교내 편의점에서 일회용 우산을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습하고 꿉꿉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비 특유의 냄새가 주변을 휘감는 듯 했다. 물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인 것 같기도 했고, 어쩌면 물에 빠지기 직전 수심 깊은 물과 대면했을 때와 같은 기분인 것 같기도 했다. 나 역시 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물이 닿은 부분이 꼭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찝찝함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는 차가운 빗물이 대충 꿰어 신은 쪼리로 가득 들어온다. 걸을 때마다 찰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학교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자취방 건물 앞까지 온 내가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가열차게 내리는 비로 인해 어둡고 습한 기운이 전신을 휘감았다. 투명한 일회용 우산을 접어 밖을 향해 탈탈 털어내니 허공으로 물기가 흐트러진다. 흥건하게 젖은 쪼리 역시 탈탈 털어내며 들어가자마자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해야지, 생각한다. 차갑게 식은 몸을 따듯한 물로 데워내고, 이불속에 파묻혀 끙끙 거리고 있는 에이스 옆으로 쏙 들어가 눈을 붙일 것이다. 저녁 느즈막히 일어나 저녁을 먹어야지.
별생각 없이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며 계단을 올랐다. 도어락 덮개를 밀어 올려 수도 없이 눌렀던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여니 바깥 공기와는 확연히 다른 훈훈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우산을 현관문 한쪽에 세워두고 다 젖은 쪼리를 벗은 채 거실로 들어왔다. 일단은 다 젖은 몸부터 씻어야겠다고 생각해 몸에서 물기가 떨어지지 않게 최대한 조심하며 거실을 가로질러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질적인 소리에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춘 나는 엄습해오는 기시감에 마름 침을 삼켰다.
…흐윽,
잔뜩 억눌린 목소리가, 내가 알고 있는 목소리임이 분명해 천천히 소리의 근원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반쯤 열려있는 방문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엄습해오는 불안감은 쉬이 없어지질 않아 긴장으로 인해 땀이 배어나오는 손바닥을 바지주머니에 문질러 닦은 내가 조심스레 방문을 밀었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후끈한 열기가 피부로 와 닿았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프레임이 두 눈에 담긴다. 침대에 반쯤 기대어 부지런히 오른손을 움직이는 '나의' 형이 프레임 가득 들어찼다. 절로 터지는 소리를 스스로 죽이려는 듯 속으로 삼키는 숨소리에 나 역시 숨을 멈췄다. 왠지 더 이상 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잡고 있던 문고리를 당기려는 데,
하윽, 루피….
내 이름이 터져 나왔다. 거짓말처럼 심장이 내려앉았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를 파악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익숙한 목소리로 터진 내 목소리에 절로 몸이 굳었다. 방문을 열지도, 그렇다고 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에이스는 점점 질척여지는 소리와 습기 더한 목소리로 절정을 치닫고 있었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붙잡고 있는 문고리에 힘을 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무릎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굴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잘 벗어날 수 있을까, 따위를 고민하는데 다시 한 번 에이스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읏, 루피-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짓말처럼 방문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손 안에 질척한 걸 쏟아낸 에이스는 밭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채 자신의 손을 빤히 바라봤다. 하얗게 흘러내리는 자신의 파정액을 멀거니 바라보다 그대로 손바닥을 쥐었다 펴낸 에이스가 입술을 짓이겼다. 파정액으로 잔뜩 어지럽혀진 그 손의 움직임이 왜 그렇게 슬로우모션이 걸린 듯 느릿하게 보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짧게 쥐었다가 펴낸 그 행동이 마치 나를 옭아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발.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문밖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시선을 맞춘 에이스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갔다. 형용할 수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에이스의 표정이,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담았다. 나 역시 도저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 지,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서둘러 옷을 정비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에이스를 등지고 현관으로 내달렸다. 현관문을 열고 복도를 가로 질러 가는 와중에 누군가와 세게 어깨를 부딪쳐 넘어질 뻔 했는데 언뜻 금발이었던 걸로 보아 사보가 집으로 찾아왔음을 알았다.
루피-!!
차가운 빗물이 얼굴을 스치고 거세게 내리는 빗물이 머리꼭지부터 빠르게 몸을 흠뻑 적셨다. 필사적으로 달리는 두 다리가 빗물에 몇 번이고 미끄러질 뻔했지만 아슬아슬하게 한계치까지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으며 숨이 턱까지 들어찼다. 자꾸만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에이스를 떨쳐내기 위해 전에 없던 속도를 냈던 것 같다.
싫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당장 내게 닥친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아서. 간혹 나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참을 들여다보던 에이스를 몰랐던 건 아니며, 형이라는 울타리 안에 나를 가둬두고 아무도 못 보게 꼭꼭 숨겨두었던 것도 몰랐던 게 아니다. 그 어린 날 아무것도 몰랐을 그 시절부터 내게 다가오는 모든 걸로부터 나를 지켜줬던 것 또한, 모르는 게 아니다. 안다면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에이스와 내가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라는 건 진즉 어려서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에이스가 나를 보며 어떠한 감정을 품어내고 있는지,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머리가 커가면서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실제로 두 눈에 담는 건 와 닿는 무게가 달랐다. 싫고 좋고를 떠나서 당장이라고 나를 보며 자위하던 에이스의 얼굴을 어떤 얼굴을 하고 마주해야하는 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꿈인데도 모든 게 생경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스쳐가는 모든 것들이 색이 죽어 까맣게 변하기 시작한다. 화려했던 네온사인과 어두운 곳에서도 빛을 내던 모든 것들의 색이 죽었다. 이제는 들리지 않는 에이스의 목소리에 마지막 힘을 내어 깜빡 거리는 신호등으로 뛰어든 내가 귓전을 때려 박는 굉음에 몸을 멈춰 세웠다. 끼익 차가 멈추는 소리와 잇따라 들리는 둔탁한 소리가 심장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웅웅거리는 이명이 귓가를 어지럽히고 말도 안 되는, 있어서는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삐걱거리는 몸을 돌려 뒤를 확인한 내가 두 눈을 꾸욱 감았다 떠냈다. 여전히 온 세상은 어두웠다. 화려하고 밝았던 네온사인은 죽은지 오래였고 나를 스쳐간 모든 것들의 존재가 부재되어있는 것만 같았다.
지독하게 차갑고 시린 빗물이 떨어졌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떨어지는 빗물을 맞으며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눈가에 잔뜩 매달려 있는 걸 눈으로 담은 내가 그제야 선명해져오는 색을 캐치했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있는 에이스 주변으로 짙은 피가 끝도 없이 퍼졌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깨닫기 전에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웅웅거리는 이명만이 자꾸만 내 귓가를 어지럽혔고 비척비척 에이스에게로 걸어가는 길은 천리가 된 것처럼 다리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로 누워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에이스는 내게 손짓 했다. 마치 누군가가 내 발목을 잡아오는 듯 무겁기 만한 걸음을 옮겨 에이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놓인 에이스를 힘겹게 허벅지로 들어 올려 시선을 맞추니 달싹거리는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이상하게 가까이에 있는 에이스가 자꾸만 보이지 않는다. 자꾸만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맑아지고를 반복하는 게 이상해 두 눈가를 비비니 차갑게 식은 손등으로 뜨거운 물기가 닦여 나왔다.
루피.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심장을 후벼 팠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갈라지고 듣기 싫은 목소리가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사정없이 찌르고 피를 낸다. 토기가 올라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까지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싶었지만 이내 허벅지를 적시는 뜨겁고 검붉은 피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삐걱거리던 머리가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진득하고 뜨거운 피가 두 손을 잔뜩 적셨다. 빗물에 자꾸만 씻어 내려가는 피를 내려다보다가 쿨럭, 하고 기침을 내뱉는 에이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에이스. 에이, 에이스….
목구멍으로 듣기 싫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꾸만 시야가 흐릿해지는 건 닦아내도 자꾸만 흘러나오는 눈물 때문이었음을 깨달았고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나를 보고 있는 에이스 역시, 나를 쫒아 오다 이렇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도저히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하염없이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나를 올곧게 바라보며 달달 떨려오는 내 손을 잡아주는 에이스의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루피, 울지 마.
잡고 있는 내 손을 꾸욱 잡으며 에이스는 말했다.
울지 마. 제발 울지 마, 루피.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다가 한 음절, 한 음절 말하는 에이스의 말에 눈두덩이를 손등으로 훔쳐냈다. 자꾸만 눈물이 눈가를 비집고 흘러나와 볼을 적신다. 참아야 하는 데 자꾸만 속에 뭔가가 얹힌 듯 숨쉬기가 벅차다.
루피, 나를 봐.
짙은 피가 잔뜩 묻은 손으로 에이스가 내 볼을 감싸왔다. 그 행동에 천천히 고개를 내려 에이스와 시선을 맞춘 내가 입술을 깨물었다.
울지 마.
…흐윽, 에이스으.
자, 착하지? 뚝. 울지 마.
그치만, 그치만 에이스.
내가,
힘겹게 입을 여는 에이스가 두 눈을 꾸욱 감았다 떠냈다. 까맣고 짙은 두 눈동자가 다시 한 번 반짝이며 나와 시선을 맞춰온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눈동자에 잔뜩 엉망인 내가 비친다.
내가, …잘못했어.
…….
내가 다 잘못했어. 미안해. 미안해, 루피.
한숨처럼 터지는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심장을 후벼 판다. 미안하다며 계속해서 되뇌는 그 목소리가 자꾸만 꺼져가는 것 같아 도리질을 쳐냈다.
그만, 그만 말해. 에이스. 그만,
루피,
그만해애. 피나오잖아, 자꾸 말하면.
좋아해.
멈춰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그 단어 하나에, 와르르 무너졌다. 견고하게 쌓아올렸던 무언가가 한꺼번에 동력을 잃고 저 깊은 바닥으로 추락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내게 말해오는 저 단어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기에, 그 동안 숨기고 숨기다 결국은 깊은 곳에서 겨우겨우 꺼내 뱉어내는 무게가 얼마나 애달픈 것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나도 무너져 내린다.
지독하게도 폭풍우 치는 날에 내가 본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까맣고 짙은 색을 띈 채 나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듯한 하늘에서는 차가운 비가 담뿍 내려앉았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깼다.
*
“ 정신이 들어? ”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잔뜩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날 내려다보고 있는 사보였다. 바닥에서부터 무언가가 몸을 잔뜩 끌어당기는 느낌이라 그대로 가만히 눈동자만 굴려 천장을 바라보던 내가 사보와 시선을 맞췄다.
“ 여기, 쪽방이야. 괜찮아. ”
그 말에 두 눈을 감아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몸에 있는 수분이란 수분은 죄 쥐어짜낼 기세로 울어 제겼으니 아플 만도 하지, 싶다. 힘도 잘 들어가지 않는 손을 들어 올려 차근차근 하나씩 손가락을 접어냈다. 하나, 둘. 그리고 아마 오늘 저녁을 넘기면 셋.
에이스가 죽은 지 삼일 째. 아마 곧 그의 발인이 있을 거다.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사보가 건네는 물잔을 받아들었다. 컵 속에서 찰랑거리는 투명한 물을 멀거니 바라보다 천천히 목구멍으로 흘려 넣으니 그동안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아 텅텅 빈속에 미지근한 물이 들어가는 게 오롯이 느껴졌다. 천천히 물 컵을 비워내고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컵을 바닥에 내려두니 사보가 어깨를 짚어왔다.
“ 좀, 괜찮아? ”
그 물음에 고개를 들어 사보와 시선을 마주했다. 푸르도록 시린 눈동자가 형광등 빛에 반짝였다. 정신줄을 놓은 나대신 장례를 치러주고 조문객들을 맞이한 건 사보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함께해왔기 때문에 분명 사보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많이 힘들고 아플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을 챙기겠다며 밤낮으로 고생했을 사보를 생각하니 그 모습이 에이스와 겹쳐서 다시 한 번 안쪽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하고 치밀어 오른다.
“ 이리와, 루피. ”
피곤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목소리와 함께 팔을 벌린 사보가 나를 불렀다. 몸을 조금 움직여 다가가니 단단한 두 팔로 나를 꾹 안아온다. 익숙한 체향과 함께 바깥바람, 그리고 자주 맡아보지 못했던 담배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담배 폈구나, 사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니 응, 하는 목소리가 딸려 들려온다. 더 이상 물어볼 생각이 없어 그대로 어깨에 얼굴을 묻으니 커다란 손바닥을 이용해 내 등을 크게 쓸어주던 사보가 입을 열었다.
“ 눈 좀 불일래? ”
그 말에 작게 도리질을 쳤다. 아니이. 잔뜩 뭉개진 발음으로 웅얼거리니 잠시 생각하려는 듯 고개를 갸웃 거린 사보가 이내 나를 안고 있던 팔을 풀러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 그럼, 나 좀 재워줄래? ”
피곤함이 그득그득 담겨 있는 그 얼굴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뻑뻑해져오는 두 눈을 자꾸 문지르며 피곤함을 호소하는 사보야말로 지금 휴식이 필요할 것이다. 끄덕인 내 고개에 얇은 이불하나 깔려 있지 않은 바닥에 모로 누운 사보가 한쪽 팔을 빼내 바닥을 팡팡 친다.
이리와.
부드럽게 터지는 목소리에 그대로 사보와 마찬가지로 모로 누워 사보의 팔에 머리를 댄 내가 사보와 시선을 마주했다. 시선이 닿는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그득그득 담겨 있는 사보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나와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나랑은 조금 다른류의 감정들이 뒤섞여 있을 사보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그 시선을 바라보다 괜히 시선을 내려 단정하게 매어있는 넥타이를 바라보다, 그래도 여전히 시선이 느껴져 다시 한 번 두 눈을 맞춘다.
“ 무슨 생각해? ”
“ 네 생각, ”
“ ……. ”
별 의미 없는 질문이 터졌다. 그런 내 물음에 사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차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한일자로 다무는데 뒤이어 사보의 목소리가 덧붙여진다.
“ 그리고 에이스 생각. ”
“ ……. ”
“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 ”
그 대답에, 그 목소리에 피곤함이 밀려왔다. 여전히 뻑뻑한 두 눈이 피곤함을 호소한다. 내 질문에 대답한 사보 역시 내 다음 대답을 바라고 말한 건 아닌지 입을 다문 채 시선을 피하는 나를 그저 말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 사보의 행동에 두 눈을 꾸욱 감았다 떠낸 내가 사보의 품으로 조금 더 밀착했다. 품안이 편해서 그랬는지, 아님 정말 내 상태가 한계까지 내몰려 있었는지는 몰라도 자꾸만 잠이 쏟아지는 기분이 들어 사보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니 사보가 내 허리를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킨다. 나를 꽉 안아오는 사보의 행동에 짧게 숨을 들이킨 내가 가만히 사보를 불렀다.
사보,
터지는 목소리가 사보의 가슴팍에 닿아 바스러지듯 사라진다. 그런 내 작은 목소리에 응. 하고 대답한 사보의 목울대가 머리꼭지 위로 움직이는 게 느껴져 마른침을 삼켜낸 내가 느릿하게 감겨오는 두 눈을 감아냈다.
“ 안 돼. ”
“ ……. ”
단호하게 터진 내 말에 사보가 숨을 멈추는 게 느껴졌다. 내가 말하는 뜻이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아들었다는 뜻인 것 같아 말아 쥔 주먹에 힘을 준 내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 알았지? ”
재촉하듯, 대답해달라는 말에 멈췄던 숨을 짧게 내쉰 사보가 내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손에 힘을 주어 나를 조금 더 끌어안았다. 답답했지만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라 그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고른 숨을 쉬며 기다린다.
“ 응, 괜찮아. 루피. ”
천천히 터지는 그 대답에, 이제는 정말 까무룩 감기려는 정신을 놓은 내가 너른 등을 세게 끌어안았다.
(에피소드오브 사보 중)
(에피소드오브 루피 중)
*
오타는 자체 필터링에 맡깁니다.
연성키워드- 폭풍우치는날에, 옭아매는, 절망
에이루 세문장 키워드-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내가 잘못했어,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에이스 미안해 좋아해ㅠㅠ
어거지로 여섯개의 키워드가 다 들어간 것 같긴 한데 왜케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지 1도 알수 없네욧
여기까지 읽어쥬셔서 감사합니다